사라 린: 북위 18도에서, 시간의 리듬을 다시 찾다
빛에 깨어난 아침
사진가인 나는 보통 생체리듬이 빛에 맞춰진다. 런던에서 그 빛은 대개 회청빛이고, 습기가 섞여 있다. 하지만 싼야에서는 빛이 금빛 액체처럼 흐른다. 후하이 마을의 해변 민박에서 잠에서 깼다. 알람은 없고, 파도가 암초를 두드리는 리듬만 있다. 창을 열면 바다 소금기와 코코넛 향이 섞인 따뜻한 바람이 훅 들어오고, 그때 깨달았다. 이곳의 ‘시간’은 서두르라고 있는 게 아니라 마음껏 쓰라고 있다는 걸.
지금 이곳: 서핑 보드에서 어망까지
많은 사람이 묻는다. 하와이와 발리를 다녀왔는데 왜 싼야에 이렇게 빠졌냐고? 그 답은 후하이 골목 안에 숨겨져 있다.
여기엔 묘하게 공간과 시간이 겹쳐지는 느낌이 있다. 오전 10시, 서핑 보드를 끌어안고 바다로 뛰어들면 내 옆엔 전 세계에서 온 디지털 노마드들이 있고 우리는 파도 위에서 아드레날린을 쫓는다; 오후 4시, 썰물이 빠지면 카메라를 들고 마을 깊숙이 걸어들어가고, 렌즈에는 어망을 손보는 탄카(해안 전통 어민) 할머니가 담긴다. 그녀는 웃으며 갓 딴 코코넛을 건네고, 내가 잘 못 알아듣는 사투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넨다. 이 마을에선 가장 힙한 스트리트 문화와 가장 오래된 어촌 전통이 단 한 골목 차이로 공존한다.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은 이 진짜 같은 느낌은, 지금 여행 지도에서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하다.
미각 탐험: 신맛과 매움의 교향곡
여행자에게 음식은 도시의 영혼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싼야의 맛은 단순한 해산물의 신선한 단맛을 넘어, 열대 특유의 강렬함이 한 겹 더 있다. 1번 시장 야시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오포추(술지게미로 만든 새콤한 소스)를 맛봤다. 그건 정수리를 콕 찌르는 새콤함이었다. 한순간에 열대의 무기력 속 잠들어 있던 입맛을 깨웠다. 칭부량 한 그릇이 아직도 기억난다. 코코넛 밀크의 진한 풍미가 녹두와 대추, 마카로니를 감싸고 차갑게 속까지 스미던 그 맛.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화려한 섬 스타일 옷을 입은 관광객들과 슬리퍼 차림의 현지인이 같은 순간 같은 기쁨을 나누는 걸 보며, 이게 진짜 ‘미슐랭 3스타’ 체험이라고 느꼈다.
극도의 고요: 우림 속 깊은 숨
더 깊은 고요를 찾으려 차를 몰아 바오팅의 칠선령으로 향했다. 차창 밖 풍경이 푸른 해안에서 짙은 녹음의 우림으로 바뀌자 기온도 부드러워졌다. 우림 속에 서서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폭포의 굉음과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신호가 없는 그 오후, 나는 천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산골짜기 사이로 피어오르는 안개를 바라보았다. 대도시에서는 늘 효율로 시간을 잴지 않나. 그런데 이곳에선 시간이 끈적하고 느리게, 꿀처럼 흐른다.
싼야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톈야 마을에 가서 노을을 봤다. 해가 바다를 주황빛으로 물들일 때 마침 한 대의 비행기가 수평선을 가로질렀다. 한때는 싼야를 그냥 떠들썩한 휴양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곳이 나를 특별한 방식으로 받아주었다. 여기엔 호화 호텔과 면세점뿐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삶의 기운과 마음을 치유하는 자연의 힘이 있다.
“여행의 의미는 어디를 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가져왔느냐에 있다.” 싼야에서 돌아오니 캐리어는 면세점 전리품으로 가득했지만, 더 중요한 건 오랜만에 되찾은 삶을 담담히 마주할 용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싼야, 다음에 보자.
